[기록에서 실천으로 · 29회] 운명의 무게를 들어 올리는 사람

우리 생각에는 인간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아틀라스기 어깨에 하늘을 지고 있듯 인간도 자신의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베토벤의 영웅은 형이상학적인 무게를 들어올리는 역도 선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중에서(p. 60)
우리는 흔히 영웅을 남보다 뛰어난 능력으로 거대한 일을 이루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나 시대를 바꾼 정치가, 고난을 이겨 낸 위대한 예술가를 영웅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말하는 ‘베토벤의 영웅’은 조금 다른 모습입니다. 그는 세상을 정복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어깨에 놓인 운명의 무게를 피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베토벤의 영웅’이라는 표현을 보면 먼저 교향곡 제3번 《영웅》이 떠오릅니다. 나폴레옹에게 헌정하려 했던 작품이며, 인간의 투쟁과 고난, 죽음과 극복을 장대한 음악으로 표현한 교향곡이기 때문입니다. 또 청력을 잃어 가는 절망 속에서도 작곡을 계속한 베토벤 자신을 영웅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읽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장에서 말하는 영웅은 특정 작품의 제목도, 베토벤이라는 인물도 아닙니다. 그것은 베토벤의 음악에서 만들어진 하나의 인간상입니다. 다시 말해 ‘베토벤적인 영웅’입니다.

이 대목의 직접적인 배경은 교향곡 제3번이 아니라 베토벤의 마지막 현악사중주 제16번입니다. 베토벤은 이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어렵게 내린 결심”이라는 말을 적고, 이어 “그래야만 하는가?”라는 질문과 “그래야만 한다!”라는 응답을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쿤데라는 이 짧은 문장에서 필연성과 운명, 무게와 가치의 관계를 읽어 냅니다.

무언가가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면 그것은 가볍지 않습니다. 그것은 선택한 사람의 삶을 붙잡고 책임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사랑과 가족, 약속과 신념을 자신의 운명이라고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그 무게를 짊어지게 됩니다. 베토벤적인 영웅은 바로 그 무게를 들어 올리는 사람입니다. 아틀라스가 어깨에 하늘을 지고 있듯이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자기 삶의 몫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쿤데라는 이러한 영웅을 단순히 찬양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 피할 수 없는 필연인지 묻습니다.

토마시는 테레자를 떠나 자유롭고 가벼운 삶을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테레자가 있는 프라하로 돌아가면서 “그래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사랑과 연민의 무게를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 순간 토마시는 베토벤적인 영웅처럼 보입니다. 그는 자유의 가벼움을 포기하고 사랑의 무게를 선택합니다.

그러나 프라하로 돌아온 토마시는 곧 의심합니다. 정말 그래야만 했을까. 테레자를 만난 일도, 사랑하게 된 일도, 다시 돌아온 일도 필연이 아니라 수많은 우연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었을까. 단 한 번뿐인 삶에서는 다른 선택을 시험해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내린 선택이 옳았는지 끝내 확인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쿤데라의 질문은 깊어집니다. 무거운 삶에는 책임과 의미가 있지만, 그 무게가 반드시 진실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반대로 가벼운 삶은 자유롭지만,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을 때 삶의 의미까지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인간은 가벼움과 무거움 가운데 하나를 완전하게 선택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에게 영웅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자신의 선택을 무조건 운명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확신은 때로 자신의 판단을 절대화하고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게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을 우연으로 돌리며 책임을 피하는 사람도 영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영웅은 자신의 선택이 우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그 선택의 결과를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 사람입니다. “다른 선택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지금 선택한 관계와 약속을 자신의 몫으로 짊어지는 사람입니다. 확신해서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확신할 수 없음에도 책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베토벤의 영웅은 형이상학적인 무게를 들어 올리는 역도 선수’라는 문장은 위대한 사람에 대한 찬사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이 삶의 무게와 관계 맺는 방식에 관한 비유입니다. 우리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무거운 운명을 타고났다는 사실이 아니라, 우연과 불확실성으로 이루어진 삶 속에서도 자신이 선택한 것의 무게를 기꺼이 감당하려는 태도입니다.

영웅은 운명을 확신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신의 선택이 운명인지 우연인지 끝내 알 수 없으면서도, 그 선택의 책임만은 가볍게 내려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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