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에서는 타인의 타자성 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있을 때마다 두 전략이 사용 되었다고 언급, 하나는 '뱉어내는' 전략이고, 다른 하나는 '먹어 치우는' 전략이다. 뱉어내는 전략은 교정할 수 없을 만큼 낯설고 이질적으로 간주되는 타자들을 뱉어 '토하는 것'. 배출하는 전략의 극단적인 양태는 늘 그렇듯이 감금과 추방과 살해이다. 그러한 전략이 업그레이드 되고 다름어진 현대화된 형태는 공간 분리, 도시 게토 형성, 그리고 각각의 공간에 들어가는 자와 사용하지 못하게 금할 자를 선별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먹어치우는 전략은 이질적 내용을 이른바 '비이질화'하는 것이다. 외부인들의 몸과 정신을 섭취하고, 먹어치우고 신진대사를 거쳐 그 섭취하는 몸과 별반 차이가 없는 동질의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이 전략 또한 식인 풍습에서 부터 강제적 동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들이 존재한다. 각 지역의 관습과 역법, 예배의식 방언 및 기타 편견과 미신에 대해 문화적 십자군 원정과 소모전이 선포된다. 이 전략은 그들의 타자성을 유예시키거나 무효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나'와 '타자' 사이의 관계를 정립해 온 과정이다. 우리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의 존재, 즉 나와 다른 특성을 지닌 타자를 어떻게 대우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에 직면해 왔다. 인류는 타인의 이질성, 즉 타자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크게 두 가지의 상반된 전략을 사용해 왔다. 바로 '뱉어내는' 전략과 '먹어 치우는' 전략이다. 이 두 전략은 겉으로 보기에는 상이한 양상을 띠지만, 결국 타자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정하거나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공통된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먼저 '뱉어내는' 전략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를 공동체의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는 방식이다. 이는 타자를 우리와 같은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염물질처럼 배출하려는 시도이다. 과거의 이 전략은 물리적인 폭력인 감금, 추방, 살해라는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이르러 이 전략은 더욱 정교하고 세련된 방식으로 진화하였다. 오늘날의 배제는 물리적 살해보다는 공간의 분리를 통해 이루어진다. 특정 계층이나 집단을 격리하는 게토를 형성하거나, 특정 공간에 출입할 수 있는 자와 금지된 자를 선별하는 차별적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눈에 보이는 직접적인 폭력 없이도 타자를 사회적 외곽으로 밀어내고 있다.
반면, '먹어 치우는' 전략은 타자를 제거하는 대신 그들의 정체성을 흡수하여 우리와 같은 상태로 만드는 '비이질화'를 목적으로 한다. 이는 타자의 몸과 정신을 섭취하여 공동체의 일부로 소화시키는 과정이다. 과거의 식인 풍습이 가장 원초적인 형태였다면, 현대적 의미의 먹어 치우기는 강제적 동화 정책으로 나타난다. 타자가 가진 고유한 언어, 관습, 종교적 의식, 심지어는 그들만의 미신과 편견까지도 지워버리고 공동체의 표준에 맞추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이는 타자의 특성을 말살하여 우리와 차이가 없는 동질적인 존재로 재탄생시키려는 시도이며, 결과적으로 타자의 고유한 타자성을 무효화하거나 유예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결론적으로, 뱉어내는 전략과 먹어 치우는 전략은 모두 타자의 '다름'을 존중하기보다는 이를 처리해야 할 과제로 간주한다. 전자가 타자를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어 존재를 부정한다면, 후자는 타자를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여 그 고유성을 파괴한다. 배제와 동화라는 이 두 가지 전략은 모두 타자의 주체성을 훼손한다는 점에서 인류가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진정한 공존이란 타자를 뱉어내거나 먹어 치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질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서로의 경계를 존중하는 태도에서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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