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에서 실천으로 · 5회] 슈퍼맨의 이상화

숭고한 정의보다 강력한, 사소한 자존심의 힘


우리는 흔히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거창하고 숭고한 가치에서 나온다고 믿는다. 불의에 맞서 자신을 희생하는 영웅,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느끼는 초월적인 공감 능력, 그리고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완벽한 도덕성 같은 것들 말이다. 우리는 이러한 '슈퍼맨'의 이상화된 정의감을 동경하며, 세상이 그러한 거대한 사명감에 의해 조금씩 진보하고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어쩌면 세상은 슈퍼맨의 이상화된 정의감이 아니라 밟으면 아프다고 꿈틀 하는 자존심, 무시하면 기분 나쁘다고 대드는 성깔, 쪽팔려서 저 짓을 못하겠다는 작은 용기에 의해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_군납비리 공익제보자. 김영수 소령의 책 [공익제보 하지마세요] 중에서

하지만 현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을 움직이는 진짜 엔진은 의외로 아주 작고 개인적인 감정들에서 발견된다. 김영수 소령의 문장처럼, 세상의 변화는 거대한 정의감이 아니라 '밟으면 아프다고 꿈틀하는 자존심', '무시당하면 기분 나쁘다고 대드는 성깔', 그리고 '쪽팔려서 저 짓은 못하겠다는 작은 용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 문장들은 언뜻 보면 정의와는 거리가 먼, 지극히 이기적이고 본능적인 감정들처럼 보인다. 자존심을 지키려는 마음이나 수치심을 피하려는 욕구는 타인을 위한 희생과는 무관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소한 감정들은 사회적 부조리를 멈추게 하는 가장 강력하고 실질적인 제동 장치가 된다.

예를 들어, 누군가 부당한 권력에 의해 자신의 자존심이 짓밟혔을 때 느끼는 분노는 거창한 사회 개혁의 의지보다 훨씬 즉각적이고 강력하다. 또한, 자신의 행동이 타인에게 비난받거나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수치심'은, 법과 규제가 미처 닿지 못하는 도덕적 사각지대에서 인간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 역할을 한다. 우리가 사회적 체면을 차리고 품위를 유지하려 애쓰는 이유는 그것이 숭고해서라기보다, 스스로 '쪽팔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는 아주 개인적인 욕구 때문이다.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영웅이 아니라,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자 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저항들이다. 거창한 정의를 외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부당함에 대해 '기분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성깔을 가져야 하며, 스스로의 품위를 훼손하는 일에 대해 '부끄럽다'고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유지해야 한다.

세상의 진보는 거대한 이념의 승리가 아니라, 인간이 가진 가장 인간적인 본능들이 모여 만들어낸 역설적인 결과물이다. 우리는 슈퍼맨이 될 필요는 없다. 그저 나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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