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라는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 염려와 감사 사이에서
우리의 삶은 결코 정지된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어느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현재는 단순히 지금 이 순간의 집합이 아니라, 자신이 간절히 바라고 갈망하는 미래와 함께 걷는 '동행'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미래를 꿈꾸며 어떤 마음으로 그 미래를 기다리느냐에 따라,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삶의 색채는 완전히 달라진다.
| 사람은 자신이 갈망하는 미래와 동행한다. 염려와 감사 모두 미래에서 도착한 손님이다. 걱정은 우리의 삶에 침투하여 불평과 두려움에 넘어지게 한다. 신자의 미래는 하나님이 정하신 미래다. 그 미래는 오늘 우리의 삶을 붙들고 일으킨다.(롬8:28). 신자의 마지막은 죽음이 아닌 부활이다. |
먼저 찾아오는 염려라는 손님은 매우 침투력이 강하다. 염려는 마치 안개처럼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현재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평안을 흐리게 만든다. 염려가 마음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면, 우리는 눈앞의 축복을 보지 못하고 불평과 두려움이라는 늪에 빠지게 된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불행을 미리 끌어당겨 오늘을 망가뜨리는 것, 그것이 염려가 우리 삶에 가져다주는 비극이다.
반면, 감사라는 손님은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감사는 미래의 선한 약속을 오늘로 앞당겨 가져오는 행위다. 우리가 미래의 선함을 신뢰하며 감사를 선택할 때, 그 감사는 현재의 고난을 견디게 하는 버팀목이 된다.
특히 신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동행은 더욱 명확한 방향성을 갖는다. 신자에게 미래는 막연한 불확실성의 영역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약속된 미래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처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확신은 미래에서 온 가장 강력한 위로다. 이 약속된 미래는 단순히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가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 삶을 붙드는 실질적인 동력이 된다.
우리가 바라보는 종착지는 죽음이라는 소멸이 아니라, 부활이라는 영광스러운 시작이다. 이 확고한 결말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미래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소망의 근거가 된다. 죽음을 넘어선 부활의 미래를 품고 걷는 이에게, 오늘 마주하는 시련은 과정일 뿐 결론이 될 수 없다.
결국 삶의 질은 우리가 어떤 미래와 동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불안한 내일을 끌어당겨 오늘의 불평을 만드는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이미 약속된 선한 미래를 신뢰하며 오늘을 감사의 눈으로 바라볼 것인가. 우리가 갈망하는 미래가 부활의 영광과 맞닿아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염려의 침투를 이겨내고 감사라는 손님과 함께 당당히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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